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덩케르크의 배경: 실화 바탕 영화
영화는 주인공을 포함한 영국과 연합군 병사 수십만 명이 독일군에 포위된 채 해안에서 구출을 기다리는 긴박한 상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덩케르크 대피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건은 '다이나모 작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영국과 연합군이 벨기에의 덩케르크에서 독일 군대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대규모 철수를 실행한 역사적 사건이다. 1940년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약 10일간 진행된 이 작전에서 영국,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다른 연합군 병사들은 소규모 상업용 보트와 어선, 그리고 심지어 개인 소유의 요트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선박을 동원해 대규모 철수를 시도했다. 이 작전으로 약 33만 명의 병사들이 구출되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이는 전쟁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작전은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해변의 전투' 연설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작전은 영국의 사기를 크게 북돋아 주었다. 덩케르크 작전은 전략적 패배 상황에서도 희망과 결단력을 보여준 사례로, 오늘날에도 영국에서 큰 기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놀란의 시간 비틀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은 늘 시간 구조에 대한 실험적 접근이 돋보인다. 이 영화도 에외는 아닌데, 영화는 세 개의 다른 시간축과 공간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늘에서의 한 시간, 바다에서의 하루, 그리고 해변에서의 일주일이다. 처음에는 이 세 시간 축이 다른 시간대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세 장소의 시점이 일치하는 순간은, 파리어가 적기를 격추시키고 해안에 비상착륙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원래대로 시간이 다르게 진행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이들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각 인물이 어떤 순간에 놓인지에 대한 조각이 맞춰지며 이야기의 전체 그림이 드러난다. 해안에서 바라본 전투기 격추 장면은 사실 파리어 시점의 결말 부분이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오히려 몰입감을 높여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관객들에게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전쟁의 개별적인 경험과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게 한다.
총평: 시간과 공간, 절망과 희망, 소음과 침묵의 교차점
이 영화는 전쟁영화답지 않게 그렇게 잔인한 묘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유혈이 낭자하고 팔다리가 굴러다니지도 않고, 악마 같은 적군의 묘사가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면 전쟁이라는 게 단순히 총격전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된다. 이 영화는 전쟁의 면모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개인이 겪는 혼란과 절말,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때로는 영웅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귀환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병사 몇 명이 공군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전쟁터에서 이들은 공군이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느껴서 절망을 했지만, 공중에서의 한 시간을 관람한 우리는 공군 파리어의 활약을 알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바다 위의 주인공 도슨이 '우리는 공군의 활약을 다 봤다'며 위로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장면의 주인공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것은 활약이 부족했다 욕을 먹은 공군인 파리어다.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것은 한 노인이 귀환하는 병사들에게 '그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알렉스와 토미는 전사한 전우들을 뒤로한채 살아서 온 것에 대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그들만 도망쳤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노인의 입을 빌려서 병사들의 귀환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한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항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때로는 생존과 귀환 자체가 승리일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과 그 안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음악도 이 영화의 즐거움을 더한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마치 다가오는 파도처럼 긴장감을 한껏 높여준다. 높게 파도 치는 혼란스러운 작중 공간과 완벽하게 매치가 되며 상황의 절박감을 극대화시킨다. 뛰어난 영상미는 물론이다. IMAX 카메라로 촬영된 비주얼은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이 진행되는데, 그래서 각 캐릭터의 표정과 영상과 음악이 주는 감정의 전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워낙 전쟁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적나라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더 큰 울림을 주었다. 놀란은 영화에서 항상 심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게 나한테는 잘 통하는 것 같다. 시간을 들여 여러번 보아도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이니 꼭 관람을 추천한다.